항아리 재떨이 본문
예전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신림에서 자취한 적이 있다. 내가 사는 곳의 원룸 건물 밖에는 항아리 재떨이가 놓여져 있었다. 워낙 원룸이 협소하다보니 담배를 피면 방에 연기가 짙게 배였다. 항아리 재떨이는 건물주 측에서 흡연자들을 배려한 조치였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짙은 갈색의 중형사이즈 항아리에는 반쯤 모래가 차 있었다. 거기에는 참 많은 종류의 담배들을 볼 수 있었다. 말보루나 마쎄등 20대들이 주로 피우는 담배가 있는 반면 한라산이나 에쎄같은 장년층들이 자주 피우는 담배도 볼 수 있었다.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간혹 가다가 학생들도 항아리가 있는곳에 담배를 피우곤 했다. 나는 그 항아리가 이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새삼 참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거리의 수호신'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재떨이가 없더라도 담배는 피우겠지만 재떨이가 있으므로 우리는 담배를 피워야 겠군, 이라고 결심하게 되니까.
늦은 저녁, 혹은 이른 새벽에 홀로 담배를 피우다보면 참, 생각이 많아졌다. 이놈의 동네엔 왜이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왜이리 적게 붙고 많이 떨어지는지. 나는 어떻게 될지.
나는 궁금해졌다. 이 동네엔 몇개의, 수십개의 항아리 재떨이가 있는걸까. 그때쯤 문재인 정부는 이전 해보다 채용하는 공무원의 수를 대폭 늘리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작은 개천이, 하나에서 두개 혹은 세개로 늘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고 또 나가게 될까. 항아리 재떨이는 몇개나 더 늘어나게 될까. 나는 그곳에서 꽤 많은 담배를 태웠고 원룸계약 기간이 만료되기전 그곳을 떠났다.
한참 지난 후에, 생각해 봐도
그 항아리는 여전히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