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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들/Life

겁과검

editor+ 2018. 9. 18. 22:35

 

[명사] 무서워하는 마음. 또는 그런 심리적 경향. 

 

살아오면서 불량배에게 돈을 뺐긴 적도없고 집에 강도가 들었던 적도 없다. 군복무시절 최전방에서 위험한 상황을 몇번 겪긴했다. 솔직히 살면서 가장 겁이났던 경험을 꼽으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길게 지속되었던 공포는 있다. 하프마라톤을 뛸 때 였다. 처음 도전한 하프마라톤 이었는데, 사실 충분한 연습을 거치지 않았다. 12월달 말이었던가, 한해를 마무리하고 한해를 다시 시작하는 의미였다. 

 

구름은 흐리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절반인 10km를 넘기고 난 후 14km의 지점을 넘기고 나서부터 무릎이 욱신거리고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더 거세졌다. 발은 계속 전진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머릿 속으론 수십 수백가지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을까?, 너무 힘든데... 포기하고싶다' 70%를 넘은 지점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진심으로 공포스러웠다.

 

같이 뛰는것도 아니고 혼자 뛰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몸의 언어는 솔직하다. 다 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발은 계속 뛰었다. 멈추지 않았다. 20분정도가 지나니 1km가 남은 지점이었다. 그 순간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은 눈이 녹듯 사라졌다. 그 이후부터 전력질주 하여 결승지점에 도달했다. 때로 겁에 질렸을때 믿어야 할것은 머리가 아닌 발이다. 

 

 

 

[명사] 무기로 쓰는 크고 긴 칼.

 

연평해전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연평도부근에서 벌어진 실제 해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참수리 357 대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나역시 연평도 부근에서 경비를 뛰어본적도 있고 참수리 대원이었기 떄문에 공감가는 점이 많았다.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명령에 따라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임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군인의 임무이고 군인의 존재 이유다. 나는 그 직전까지 가봤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다.

 

검은 쓰는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일단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는 영문도 모른채로 출동한 경우가 많았고, 가끔은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상황실에서 부대의 지휘관에게 이유를 설명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죽고 사는것은 꽤 간단하고 손쉬운 일이었다.

 

연평해전 생존자인 이희완씨의 강연을 들은적이 있다. 그는 적 포탄 때문에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어 지팡이로 몸을 지탱한채 걸어다녔다. 출입문에서 강연대에 오르기까지 모두가 숨을 죽였다. 강연은 시작되었고 그는 유쾌하고 명쾌한 자세로 청중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주었다.

 

그는 부러진 칼이었으나 여전히 날카로웠다. 나는 칼이 중요한 것인지 예리함이 중요한것인지 꽤 길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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