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불량품 입니다. 본문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해 들어봤고 그것이 현시점에서 실패한 이론이라는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냥 아무 기대도 없이 집어들었던 책이었는데. 이럴수가. 이렇게 쉽고 재미있고 새로울수가 없었다.
책의 구성
1. 1만원보다 1시간이 소중하다.
2. 우리는 시간을 빼았기며 살고 있다.
3.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사라
4. 나는 행복한 불량품이다.
책속의 밑줄
카를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자 -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자본론>을 사회주의에 대한 책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본론> 얘기를 꺼내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는 관심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안타깝게도 이런 반응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자본론>은 제목 그대로 자본주의 사회룰 논한 책이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미안하지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한 분석은 전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는 사회주의 사회나 공산주의 사회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마르크스가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어떻게 있지도 않은 것을 분석하겟나? <자본론>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탁월한 자본주의 분석 때문이다.
pg.78
나의 무지에 무릎이 탁 쳐지는 구절이었다. 마르크스가 단순히 공산주의 이론을 전파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자본주의를 철저하게 분석한 사람이었다.
조선시대 왕이 어떻게 거대한 경복궁에서 기거할 수 있었겠는가? 백성들이 부역으로 동원되어 경복궁 건설에 자신의 시간을 바쳤기 떄문이다. 왕이 경복궁을 자신의 거처로 삼는 것은 백성들의 시간을 빼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의 시간을 빼앗아 부자가 된다는 것이 <자본론>의 분석이다.
떄문에 <자본론>에서는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라고 분명하게 구분한다. '노동력의 대가'란 노동력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는 의미다. 만약 임금이 노동의 대가라면 빵8개를 만든 노동자는 3만원이 아니라 8만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렇게 임금을 주면 자본가 입장에서는 이윤이 나지 않는다. 이윤이 나지 않으면 회사를 운영할 이유가 없으며, 이런 상황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요컨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착취가 필수'라는 의미다.
pg.129
그렇다 직장인들은, 본인의 시간(인생)을 직장에 바친다. 물론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월급과, 사회적인 소속감, 가정을 지탱한다. 대부분이 그렇게 생활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의깊에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거래되고 있는 대상들, 즉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고있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불리한 거래는 멈출수 있고 유익한 거래를 지향할 수 있을 테니까.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느낌을 아는가? 감히 얘기하는데, 나는 안다. 매일매일 작가로서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나 스스로 통제한다. 이 해방감과 충만함을 맛본 사람은 다시 시간의 노예로 돌아갈 수 없다. 과연 이 행복을 누가 알까? 다시 태어나도 이 삶을 살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규격품의 삶을 거부하고 불량품이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다. 그렇다. 나는 행복한 불량품이다.
pg.242
저자는 서울대학교 공대를 나와서 전공을 살려 직장생활도 했지만 그만두고, 무작정 시간을 주인이 되기로 한다. 생계형마르크스주의자의 유쾌한 자본주의 생존기라는 부제처럼. 그는 돈보다는 시간을 중요시하는 삶을 살았고, 비록 현재까지도 대학동기들에 비해 풍족하게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자본론의 해설집에서만 그치는 것이아니라, 그것에 입각해 저자가 실제로 살아온 삶이 유쾌하게 적혀있어. 에세이집으로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감상
1만원보다 1시간이 소중하다. 라는 1장이 정말 가슴에 와닿았다. 사실 해군부사관으로 안정된 직업을 마다하고 나온 첫번째 이유도, 나의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2주는 항해하였고 1주는 정박하였으니. 당직서는 날을 제외하면 한달에 순수하게 퇴근할수 있느 날은 5~10일 뿐이었다. 월급은 꼬박꼬박 쌓였고, 쓰지 않아 돈은 차곡차곡 모였으나, 동시에 나의 시간은 차곡차곡 사라졌다. 학원을 다닐수도, 운동을 배울 수도없었다. 짧은 시간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들이켰다. 삶은 무료해갔고, 쌓여가는 돈보다, 내가 바쳐야 하는 시간이라는 무게의 추가 더 무거워 졌을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물론 그 대가로 안정된 보수와, 보장된 직업은 사라졌고. 현재는 생계모드로 미니멀리즘하게 살고있지만. 동시에 나는 시간의 주인으로 살고 있고 소비보다는 체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솔직히 아직 마냥 행복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나는, 분명 이전의 나보다 더 나은 나이다.